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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입장에서는 단어에 남녀 성이 표시되는게 어색하다. 우리가 가장 많이 배우는 영어도 성이 없는데 프랑스어에는 성이 있다니... (사실 영어에도 성을 표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예를 들면, ship은 she로 받는다던지...) 그래서 처음 언어에서 성을 다루는 언어를 접하면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유럽어 중에는 프랑스어처럼 성을 다루는 언어가 많다! 프랑스어는 성, 수가 있어서 수식하는 단어와 수식을 받는 단어를 명확히 알려주고, 그래서 글에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준다.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울 때, 그래서 외교 문서로서의 역할이 컸다고 배웠다. 물론, 영국의 국력이 강해지면서 그 지위를 많이 뺐겼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프랑스인 입장에서도 성을 왜 다루는지에 대해 쓴 글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요약: 서구 언어의 종교와 문화의 변화에 따라 문법에 성이 생겼고, 나라마다 그 진화의 모습은 다르다.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건 당연하다기 보다 문화적인 것이다. 어떤 점에서 우리의 세계관이 문법의 성에 영향을 미쳤을까?


"Bernard et ses soeurs sont-ils arrivés"? 같은 문장을 발음할 때 이상하게 들리는가? boulangère를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Madame le Ministre"는 어떤가? 만약 언어가 우리의 세계관을 만든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질문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Alex Taylor,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영국 기자는, 어렸을때 겉보기에 가장 중성적으로 보이는 것, 상징적 의미가 없는 것도 성이 있다는 것이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그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우아함과 여성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찾았으나, 결국은 허사였다...


내 입장에서는, 프랑스어의 어떤 터무니 없음에 또 다시 당황했고, "Ces phénomènes et créatures dangereux." 같은 문장을 쓰기로 항상 결심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 모국어의 문법을 쓰게 한다. 


문법적 성은 유용한가? 아니면 쓸데없나?


만약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완전히 정상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당연한 것이 아니다. 때때로, 성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핀우그리아어 (les langues finno-ougriennes)에서, 이 언어는 성을 구별하지 않지만, 생명이 없는 것과 생명을 구별하는데 슬라브어도 이렇게 구별하는 것을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헝가리어와 핀란드어에서는, 이 차이도 없다. 예를 들어, 당신의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elle"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ça"가 당신에게 이야기를 해줬다고 할 것이다. 이뿐아니라, 바스크어, 에스토니아어, 터키어, 어느 정도는 중국어도 실제로 성의 구별을 무시한다.


이 질문에 다가갈 수록, 우리는 생물/무생물 구분하는 것이 남성/여성을 구별하는 것보다 역사적으로 앞선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면, 간단하게 후자는 유용하지 않기때문이다라고 이십세기 주요 언어학자중 한명인 Antoine Meillet가 이야기 했다. 그는 다른 언어들을 지배하는 혼란에 대한 증거를 향해 연구했고, 결국 우리는 단어의 실제 성격에서 성을 유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시 말해서, 왜 clé가 독일어에서는 남성이지만 스페인어에서는 여성인지 모른다. 


나라마다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지만, 하나의 언어를 들여다 본다면 수수께끼가 있다. 왜냐면, 생명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고 땅과 아이를 낳는 어머니 사이에 상징적 연결을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법적 여성은 무엇때문에 여성명사인 바나나에서 여성적 형상을 이끌어 냈을까? 우리는 사실 그 반대로 이야기 하고 싶다...

자, 많은 언어학자가 문법적 성 부분을 들여다 보길 싫어한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문법적 성은 사실 상황을 자세하게 서술할 때는 유용하지만, 일반적인 문맥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고 여성을 만들었다.


공통 인도-유럽어 (우리의 인도 유럽어의 기원인 선사 언어)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원래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하는 것이 뛰어났다는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의식과 믿음이 힘과 자연 요소와 결합되어 있을 시대의 물활론적 시각의 전형이다. 그다음 이 구분은 점점 사라지고,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유일신 종교가 물활론적 종교를 대체했다. 물활론에서는, 여성이 강하게 권력과 힘에 대한 생각과 연관되어 있었는데, 유일신 종교하에서, 이 속성은 남성의 특권으로 바뀌었다. Arent J. Wensinck과 Jean Markale이 특히 이 논쟁적 생각을 방어했지만 이를 증명하는 것은 지금도 어렵다.


그 반면, 훨씬 더 명확하고 추적가능한 것은 남성이 문법적으로 우월한 성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근접 법칙이 문법적 일치를 결정한다. 모든 로직에서, 그때는, 동사 어미를 변화하면서 가장 근접한 용어에 일치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더 직관적인 이 방정식을 따른다면 우리는 "Ces phénomènes et créatures dangereuse"라고 쓸 수 있을 것이고, 이는 퀘벡에서는 허용되고 있다. 근접 법칙은 고대 프랑스어에서는 17세기까지 유지되었다. 1675년까지 유지되서, Bouhours 신부의 예민한 귀도 남성의 우월함에 대한 이 침해를 불편해 하지 않았다. 어떻게 남성 명사가 여성으로 어미변화를 하게 되었을까? 그 유명한 근접 법칙은 프랑스어에서 그 이후 남성은 시스템적으로 포함하게 되었다.


성, 문화의 이야기


요약하면, 문법적 성은 우리의 경험에 주로 연결되어 있다기 보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더 이상 의사소통의 실제 필요라기 보다는, 문법적 요소에 영향을 받은 역사적 진화이고 특히 문화적 요소에 영향을 받았다.

여러 문제는 여러 답이 있다. 즉, 전세계에 절친 여러 언어들에 존재하는 다양성은 문법적 성이 동일하게 같은 방식으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증언한다. 그 반대다. 핀란드어와 헝가리어는 문법적 성이 없고, 독일어는 남성, 여성, 중성을 사용한다. 영어는 사람에 대해서만 사용하고, 각각의 언어는 결국 세계를 각자의 소스로 본다. 그러나 맛은 바뀔 수 있다. 스웨덴어는 적절하게 그 증거를 제시하는데, 영원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언어의 구조는 현실에 따라 완벽히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정신에 따라, 1966년에 "hen"이라는, 성이 없는 사물의 개념을 지시하는 인칭 대명사가 도입되었다. 특히, 너무 이분법적인 성의 시각을 가진 언어를 해방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언어는 파시스트다"라고 Roland Barthes가 단언했다. 언어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능력을 증거로하는 방정식이고, 동시에 문법적 성에 대한 질문이 하찮다는 것에 따른 논쟁을 없애는 것이다. 문법적 성이 처음부터, 우리 경험에 어떤 이슈가 되지 않는다고해도, 그럼에도 현재 언어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세계관을 판가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문법적 가치를 낮게 평가할 때는 아니지 않은가?


참고: https://fr.babbel.com/fr/magazine/pourquoi-les-mots-ont-ils-un-gen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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